정말 맛있는 오이피클 만드는 법~!!


우리 아들이 엄청 좋아하는 피클~!!

만든다고 계획만 하다가 오이가 세일하길래 사와서 만들었다.

너무 맛있는 오이 피클, 게다가 만들기도 너무나 쉽다.


피클류의 황금레시피가 물:식초:설탕 3:2:1이라는 사람도 있고 3:1:1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4:1:1로 했다.

신맛도 적당하고 상큼하니 너무 맛있다.





홈메이드 피클 재료

원하는 야채류: 나의 경우 오이 4개, 파프리카 1개

물 4컵, 식초 1컵, 설탕 1컵, 소금 2수저, 스파클링 1수저 (종이컵, 밥 숟가락 기준)

월계수 잎 조금(생략 가능)



오이 4개, 파프리카 1개를 준비했다. 집에 양배추나 콜라비같은 것 있으면 넣었을텐데, 없어서 아쉬웠다.




오이는 굵은 소금으로 박박~ 문지르고 물로 씻어내고, 파프리카는 베이킹소다로 세척하였다.

굵은 소금으로 오이를 문지를때 손이 아프다. 고무장갑은 설겆이용이라 찝찝해서 일회용 장갑을 끼고 닦았더니 좀 나았다. ㅋ




깨끗이 씻은 재료를 먹기 좋게 자르고 소독한 병에 담는다.

자르는 굵기며 크기는 개인의 취향이다.



  


제일 중요한 피클물을 만들어야 한다. 종이컵으로 물 4컵, 설탕 1컵, 소금 2 수저, 스파클링 1수저를 넣고 끓인다.

한 번 부르르~끓으면 불을 끄고 식초 1컵을 넣고 휘휘~젖는다.


그리고 바로 오이가 들어 있는 병에 붓는다.




실온에 반나절~하루동안 놓아두고 냉장고에서 보관하면 된다.




익은 모습이 눈에도 보인다. 오이 색깔이 변했다. 맛있겠다~~^^



완성된 오이 피클을 그릇에 담은 모습이다.




새콤 달콤, 아삭아삭 오이 피클 너무 맛있다.

에브리 데이 즐겨먹을 수 밖에 없는 오이 피클이다. 뿌~듯하다. ^___^



다이어터 만화책 일상 2016. 3. 31. 09:00

다이어터



웹튠으로 다이어터를 만났을 때, 너무 공감되고 재미있게 읽었다. 수지가 식탐 부릴때는 영락없이 나였다.ㅜ.ㅜ

이건 소장용이다라는 생각에 주저없이 책을 주문했다.


주인공은 25살, 평범한 은행원 신수지, 몸무게는 90kg

다이어트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반복하다가 요요가 오는데, 우연히 서찬희 트레이너를 만나게 되고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다이어트 성공하는 얘기를 다루는 내용이다. 

다이어트 성공하는 얘기가 모두가 알고 있는 식이요법과 운동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정석이고 정답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주인공 신수지가 겪는 음식에 대한 유혹에 무너지는 것과 각종 다이어트 상품들을 사는 것이 꼭 나 같다. 

완전 공감 백퍼다. ㅠㅠ




  

과자를 먹으면서 다아이트 제품 광고하는 홈쇼핑을 본다. 


  

홈쇼핑을 볼 때까지만 해도 사지 않을 꺼란 생각을 하지만, 다이어트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어느새 결제를 하게 된다.

그러나 몇 일만 운동할 뿐, 점점 빨래걸이로 쓰고 있다. 

그러면서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오늘까지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하자~!!라고 마음먹는다.

=> 완전 나 같다. ㅠ.ㅠ


그래, 맞아~!! 살을 빼는 데는 내일이 없다. 


  

마리프랑스같이 기구를 이용해 살을 빼주는 곳에 가게 된다. 비용은 어마어마 하지만 살이 빠진다는 생각에 통~크게 결제를 하게 된다. 마치 다이어트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과 함께.

=> 이 상황도 완전 나다. 공감 백퍼~~



결국 돈만 날리고 다이어트에 실패하게 되는 신수지. 그 스트레스로 또 폭식을 하게 된다.

=> 수지야. 내 얘기랑 어쩜 그리 똑같니.


정석으로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는 신수지~!!


  

마트에서 장을 보는 신수지!!

ㅋㅋ공감 백퍼, 가격을 무시할 수 없지. 몸에 좋은 건 비싸고 맛도 없고. ㅠㅠ



  

꾸준히 식이요법을 한 결과 편의점에서도 건강한 먹거리를 구매하는 신수지!!

=> 슬프게도 난 아직 이 단계 근처도 오지 못했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식이요법과 운동이 삶의 한 부분이 되는 신수지~!!

=> 얼마나 하면 이 단계 수준까지 올까?? 


  


그렇게 꾸준히 1년동안 꾸준히 운동과 식이요법을 해서 30kg를 빼고 보통 여자가 되었다.

신수지는 또 다른 목표와 평범한 삶을 위해 평생 식이요법과 운동을 하겠지?


그래..결심했어!!!!  내일부터 다이어트 하자!!! ㅋㅋㅋㅋㅋㅋ

난 왜 1단계부터 넘어가질 않는 건가? 내 옆에서 서찬희 트레이너가 있으면 좋겠다.


암튼, 이 다이어터 웹튠은 다이어터라면 필수로 읽어야 할 책이다.^^



차이나는 도올 4부

 

이번 주에도 너무 재미있는 강의였다.

오늘날의 시진핑을 만든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무엇때문에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 강의를 해주셨다.

매회 차돌상에게 주는 도올 선생님의 선물!! 이번주에도 역시나 가보로 남겨야할 것을 준비하셨다.

나도 받아보고 싶다. +_+

차돌상을 얘기하면서 중국에 가셨을 때 주었다는 메달을 보여주면서 메달에 대해 설명하심.

 

 

 

1950년에 서북군정위원회가 국민당으로부터 서북이 해방된 기념으로 발행한 메달이다.  

이때 서북군정위원회의 주석이 팽덕회, 부주석이 시진핑의 아버지 시종쉰이였고, 팽덕회는 한국전쟁(6.25) 당시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이였다.

 

 

 

중국에서 한국전쟁을 항미원조 전쟁(미국에 저항하여 조선에 원조를 한 싸움)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팽덕회는 한국에 있었고, 주석 팽덕회를 대신해 부주석 시종쉰이 서북지구 전체 관할을 하여 실질적인 주석이였다. 시진핑 주석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아버지(시종쉰)가 만든 메달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하셨다. 꼭 만나셨으면 좋겠다. ^^ 

 

 

 

시중쉰은 항상 겸손하게 살아왔는데 1962년에 반당으로 몰린다.

여기서 Song of Arirang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완전 감동이였다.

Song of Arirang은 중국 공산당 혁명을 전세계에 긍정적으로 알린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에드거 스노우(Edgar Snow)의 부인 님 웨일즈가 쓴 책이다.

 

님 웨일즈가 Song of Arirang을 쓴 배경은 1937년 중국 공산혁명 취재차 연안지역에 간 님 웨일즈가 

중국 연안에 있는 루쉰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는데 자기가 빌리려고 한 책들 마다 한 사람이 빌려가더라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지 호기심이 있어서 꼭 만나고 싶다고 편지를 썻다고 한다. 

 

 

그 남자는 김산이라는 한국 남자였고, 영어, 일본어, 독일어, 라틴어를 했다고 한다. (허걱~~언어 천재시다.)

님 웨일즈는 "당신과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한국 혁명가의 전기를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니 김산이 "나는 비밀 요원이라 다 말할 수 없는데 정말 원한다면 내가 죽은 후에 공개하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김산이 죽고 나서 님 웨일즈가 김산의 인생이야기를 쓴 책이 Song of Arirang이다.

 

 

이 김산이 1938년 트로츠키파. 일본 스파이 죄목으로 중국 공산당에게 모함을 당해 처형당하는데,

김산을 모함하여 죽인 사람은 강생이다.  강생 나쁜새끼네~!

 

 

 

중국 현대사를 망친건 모택동이지만, 진짜 나쁜 사람은 모택동 부인인 강청이고, 이 강청을 뒤에서 조종한 사람이 강생이라고 한다. 시종쉰을 모함에 숙청한 인물 또한 강생이다. 어떻게 모함했을까?

시종쉰은 유지단이라는 사람과 함께 혁명을 했고 유지단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만들기 전에 죽었다.

이 유지단의 제수씨(남동생의 부인)가 쓴 "소설 유지단"은 반혁명적인 내용(암암리 모택동을 비판함)이고 이걸 시종쉰이 기획했다고 모함을 했다.

시종쉰은 1962~1978년까지 16년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고, 시진핑 또한 좋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의 숙청으로 인생이 뒤바뀐다. 시진핑은 이때 혁명을 빙자한 정치의 비애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는다.

그리고 시진핑은 하방을 강요당한다.

 

 

말이 하방이지 실상은 무서운 강제 노역을 하는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대대적인 하방이 강요되는데, 문화대혁명은 왜 생겼을까??

 

문화대혁명이 있기 전에 모택동이 추진한 경제발전 운동인 대약진 운동이 있다.

대약진운동은  경제발전을 위한 운동인데, 도대체 어떻게 대약진운동으로 4천만 명이 죽었을까??

 

인민공사 : 1958년 인민통제를 위해 만든 정사합일 조직.

사회주의 국가가 됐는데 우리가 밥은 먹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인민공사 대식당을 만들고 무료 급식을 하게 된다.

또 철 생산때문에 집집 마다 철을 다 수거해서 식기류가 없게 된다.

전 인구의 90%가 인민공사 대식당을 이용했고 이후 자연재해(1960년 전후 기근과 자연재해 발생)로 인해 공짜 식당(인민공사 대식당)을 운영할 수 없게 되어서 4천만명이 굶어 죽게 된다.

1959년 4월 대약진 운동으로 문제가 발생하자 모택동이 물러나고 유소기가 제2대 국가주석이 된다.

등소평과 유소기가 대약진운동 뒷수습을 하는데 생각보다 잘해서 모택동이 오히려 걱정을 한다. 모택동은 본인 권력 유지를 위해 등소평, 유소기를 축출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홍위병을 앞세워 주자파를 비판한다.

홍위병 주도로 출판, 문화, 학계, 정계, 각 방면의 지도자를 숙청하는데 이게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진다.

 

 

문화대혁명때 지식청년 1600만 명이 하방을 당하는데, 시진핑은 15살때 아버지의 고향 섬서성 농촌으로 하방을 당한다.

인민공사 대식당이 폐쇄되어 먹을 거라곤 수수깡 초근목피일 뿐~!!

10대의 시진핑에겐 참기 어려운 참혹한 농촌 현실이어서 4개월만에 북경으로 도망간다.

이후 어머니의 설득으로 자수를 하게 되는데, 다시 북경의 학습반에 편입되어 중노동을 하게 된다.

현재 북경대 주변 북경시 해정구 하수관 매설 인부로 노동을 한다. 24시간 노동, 도망 가능성 0%.

그래서 큰 결심을 하고 다시 섬서성 연청으로 간다.

 

 

아버지의 고향 섬서성에서 다시 이를 악물고 7년간 농민에게 동화되는데, 

이 하방생활 7년은 오늘날의 시진핑을 만든 원동력이다.

 

 

 

시진핑의 큰 특징은 아버지 시종쉰은 유명한 혁명 원로다. 아버지의 삶이 시진핑에게 큰 은덕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9살때까지 아버지와 북경에서 살면서 아버지가 가장 시진핑에게 가르킨 명언이 있다.

" 평생 네가 원하지 않는 걸 남에게 베풀지 말라".

 

 

아버지의 뼈져린 교훈을 가슴 깊이 품었던 시진핑은 하방생활을 견디게 한 한마디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16살까지의 시진핑의 얘기였고, 다음 이야기는 다음주에 할 예정이다.

이후 알파고와 이세돌 관련 질문이 있어 이에 대해 얘기도 하셨는데, 결론은 이건 완벽한 불공정한 게임이다.

기계는 기계끼리, 인간은 인간끼리 대결해야한다. 아웃~!!

도올 선생님의 사이다 강의~!! 매 강의마다 감동이다.